1.
오징어게임과 마이네임은 잘 버텼는데, 과격하면서도 다소 어이없는 <지옥>의 설정 앞에 나는 제 발로 다시 지옥의 문을 두드렸다. 바로 넷플릭스의 '구독 지옥' 말이다. 넷플릭스 재구독 절차는 내가 마음먹게 된 찰나의 시간만큼이나 신속했으며 친절했다. 단 한 번의 클릭으로 결제가 완료됨과 동시에 친절한 문구로 반겨주기까지 했으니까. 뭐랄까 머잖아 금방 돌아올 것을 이미 안 것처럼 말이지.
넷플릭스 첫 구독은 린이와 영화를 보기 위함이었다. 물론 딱 한 달뿐이긴 했지만. 한 달 만에 구독을 취소한 이유는 또 다른 구독 생태계의 포식자인 밀리의 서재 때문이었다. 그 포식자의 정체와 소문은 오래전부터 익히 알고 있었지만, 종이책 신봉자인 내게 전자책은 이단 그 자체였다. 그러나 '독서생활의 혁명'이라는 혹할 만한 슬로건의 전자책 서비스를 단 하루 체험했는데 곧바로 신세계임을 직감했다. 구독을 거부한다는 것은 (거의) '나는 씹선비 꼰대요'를 자처하는 꼴이었다. 매월 30일이 정기 결제일인데 이번 달도 결국 해지할 명분을 찾지 못했다. 아울러 정기적으로 구독하는 서비스(유/무료)들이 꽤 많아 골머리가 조금 아픈 상황인데 이에 대한 내용은 따로 쓸 예정이다.
<지옥>에 대한 관심은 '하루만에 세계 1위'라는 명성은 아니고, "연상호 감독과 최규석 작가의 합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어지간해서는 한 번 본 영화는 좀처럼 보지 않는데,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을 대략 5번 정도 봤다.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최규석 작가의 <송곳>을 불후의 명작(웹툰, 드라마 모두)으로 꼽는데, 그 웹툰 때문에 노무사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는 사실은 나를 잘 아는 지인이라면 거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나에겐 저 두 거인이 합작한 작품이라면 <지옥>이 아니라 <지랄>이라 할지라도 봤을 거다. 작품 자체만 보더라도 탄탄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속도감 있는 전개와 연출, 오컬티즘적이면서도 과하게 처지지 않은 영상미, 그리고 믿고 보는 배우들의 연기까지 영상 콘텐츠가 보여줄 수 있는 상상력과 강력한 흡인력을 가진 것은 분명해 보였다.(항간에는 웹툰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영상이 좋았다는 반응도 있다카더라)
2.
영화 <신과 함께>처럼 지옥의 시공간을 보여줄 것 같지만, 카메라는 우리가 발 딛고 사는 현실 세계를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는다. 심지어 괴상망측한 신의 사자가 죄인을 처참하게 처단하는 '지옥행 시연' 장면에서도 말이다. 이러한 점에서 <지옥>은 '신과 함께'와 달리 지옥의 현실이 아닌 현실의 지옥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그래서 초현실의 세계보다는 불가해한 사실을 마주한 현실 세계 속 인간 군상들의 다양한 반응을 세밀하게 포착한다. 그래서 관심의 초점은 아수라장, 아비규환이 가득한 현실을 해석하며 반응하는 다양한 인간의 군상의 면면이다. 작품은 단순히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묻는다. "만약 당신이 작금의 상황 가운데 처해있다면, 어떻게 이해하고 반응할 것인가?"
작품의 세계 속에서는 크게 세 부류의 인간이 존재하는 것 같다. 지옥행의 시연이 예정된 당사자와 그 당사자의 가족 및 지인, 그리고 그 시연을 지켜보는 제3의 사람들이 그렇다. 재난과 같이 생존을 위협하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보편적 정의는 특정 이념과 경험에 의해 재구성된다. 그것은 곧 신념이 되어 인간들의 사고를 잠식한다. 이러한 신념의 근간에는 대체로 살고자 하는 의지와 죽음(지옥)에 대한 공포에 기인한다. 참혹한 현실 앞에서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살고자 하는 의지를 압도하기 마련. 역설적이지만 미지의 공포와 두려움은 인간의 나약하고 교활한 의지를 통제하는 가장 탁월한 시스템으로 등극한다.
이 지점에서 신흥종교인 새진리회 정진수 의장이 혜성처럼 등장한다. 그가 말하길 시연이란 인간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하여 분노한 신의 메시지이다. 인간은 그저 자신이 지은 죄를 명명백백하게 시인하고 신의 처단을 겸허히 받아들일 뿐이라고 천명한다. 오직 죄인의 시연을 통한 공포만이 죄악 된 세상을 거스르고 선한 세상을 이룩할 수 있다며 말이다. 그러나 정진수 의장은 뒤이은 목사 김정칠에 비하면 낫다. 신념이 그릇되긴 했지만 최소한 왜곡하거나 기만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김정칠은 정진수의 교리와 세력의 바통을 이어받은 새 의장이다. 그러나 교묘하게 거짓된 선동을 부추기며 권력과 세력을 확장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인 인물이다. 허나 정작 본인이 불리하다 싶으면 공격하는 상대를 두고 '메시아'라 추앙하며 배후를 노리는 야비한 인물이다. 그야말로 강약약강의 전형이다. 가끔은 괴상망측한 신의 사자가 온당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렇게 거짓의 양상은 회차를 거듭할수록 노골적이고 태연해진다. 새 진리회만큼이나 악한 세력을 논하자면 화살촉을 빼놓을 수 없는데, 정진수를 맹목적으로 추앙하는 민간 폭동 세력이다.(=무식하면서 용감한 양아치) 화살촉의 광기는 김정칠 이상이다. 시연 고지를 받은 '죄인'과 그 가족들을 색출하고 척결하는 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새진리회와 화살촉의 관계는 마치 다단계 기업과 조직 폭력배처럼 목적에 따라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카르텔 집단인 셈이다.
왜곡된 정의와 신념이 권력과 상식이 된 세상, 이 현실이야말로 진정한 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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