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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 핸드폰의 배터리를 주문했다. 완충해도 반나절도 안 돼 방전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폰을 구입한 지 7년째다. 그런데 이보다 더 놀라운 사실이 있다. 나는 LG폰을 쓴다. 기종은 LG V30, 색상은 보랏빛 바이올렛. 다 알다시피, 아니 어린 친구들은 LG가 스마트폰을 만들었는지조차 모를 수도 있는데, LG는 오래전에 스마트폰 사업을 철수했다. 하지만 LG폰의 성능은 꽤 괜찮아서 중고시장에서 서브폰으로 많이 매매된다고 한다. 여튼 나는 LG V30을 메인폰으로 7년 가까이 썼다. 스스로 평가하건대, 나는 알뜰함과 짠함 사이 어딘가에 있는 사람일 것이다. 스마트폰 사업을 철수해서 그런지 본사 정품은 없었고, 일본 회사가 중국에서 만든 배터리만 검색됐다. 가격은 13,000원으로 저렴해서 구입했다. 이 구형폰을 여전히 쓸 생각인 내 판단이 알뜰함과 짠함을 넘어 존경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웬걸, 동생이 자신의 아이폰을 쓰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난 한 번도 아이폰을 써본 적이 없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만 써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걸리는 건 통화녹음과 페이다. 아이폰은 자체 통화녹음 기능이 없고, 애플페이는 삼성페이만큼 사용처가 폭넓지 않다. 물론 장점도 있다. 무엇보다 가격이다. 반려동물처럼 애지중지 다룬 동생의 아이폰은 외관상 거의 새것 같았다. 게다가 배터리 관리도 훌륭했다. 중고시장에서 50만 원에 거래되는 그 아이폰을 동생은 20만 원에 넘기겠다고 했다. 최근 내가 눈여겨본 삼성 보급폰 A35의 자급제 가격이 30~40만 원대임을 고려하면 확실히 저렴하다. 아이폰에 대한 호기심과 동생의 진심 어린 제안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늦어도 몇 주 뒤에는 동생의 아이폰을 넘겨받게 될 예정이니, 구입한 LG 배터리를 환불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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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는 해외 배송으로 3주가 걸렸다. 도착하자마자 환불 처리 절차를 밟고 문 앞에 물품을 내놓았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도 그대로였다. 순간 "사기당한 건가?" 싶었지만,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며칠 뒤 환불과 함께 한 통의 문자가 날아왔다. "해외 배송비 초과로 해당 물품은 자체 폐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렇다. 해외 배송비가 물품 가격을 초과해 회사 입장에서는 물건을 회수하는 게 손해라는 것이었다. 버릴까 고민했지만, 단 며칠이라도 쓸 핸드폰에 아까운 배터리를 그냥 버릴 수 없었다. '내가 쓰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날 밤, 벌어질 악몽은 상상도 못 한 채 말이다. 박스를 개봉했다. 일본산 비정품 배터리와 몇 가지 공구가 들어있었다. 유튜브에서 'LG V30 배터리 교체'를 검색해 관련 영상을 찾아봤다. 조회 수가 가장 높고 길이가 짧은 영상 하나를 클릭했다. 영상 속 설명은 비교적 간단했다. 뒷판을 따고, 배터리를 덮고 있는 얇은 판때기를 나사로 제거한 뒤, 배터리를 교체하고 조립하면 끝나는 과정이었다. 작업을 통해 얻게 될 성취감이 괜스레 재미있을 것 같았다. 기타 피크처럼 생긴 공구를 손에 쥐고 야심 차게 작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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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랍쇼? 뒷판 케이스를 따는 것부터 문제가 시작됐다. 일체형 뒷판 틈에 얇은 카드를 넣어 분리하는 작업에서 카메라 쪽 바이올렛색 필름이 흉하게 찢겨 나갔다. 뭐, 괜찮다. 외관상 보기 싫을 뿐 기능에는 문제가 없으니. 다음은 겨자씨만 한 나사를 푸는 차례였다. 나사풀기는 내 전문이다. 7개의 나사를 모두 제거하고 얇은 판자를 떼어내자 드디어 배터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배터리가 꺼내지지 않았다. 접착제로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지렛대 원리를 이용해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지만, 접착제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결국 힘을 더해 배터리를 떼어냈고, 새 배터리를 규격에 맞게 넣었다. 나머지 과정은 역순으로 조립했다. 예상보다 시간이 걸렸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전원이 들어오지 않았다. 뒷판을 닫기 전에 충전기를 연결해 작동 여부를 확인하려 했는데, 화면이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당황스러웠다. '왜 이러지? 뭐가 문제지?' 하는 생각으로 충전기를 여러 번 재연결해보았다. 분명 과정상 실수는 없었는데 왜 작동하지 않는 걸까? 고민 끝에 배터리 불량일 거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서둘러 다시 분해해 원래 배터리를 장착하고 충전기를 연결하자 화면이 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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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 켜지네?' 안도감과 동시에 짜증이 밀려왔다. 역시 중국산 제품은 믿을 수 없는 걸까?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이 배터리에 대한 다른 사용자들의 불만은 찾아볼 수 없었다. 기존 배터리를 빼고 새 배터리를 다시 한번 장착해보았다. 이번에는 배터리 전체를 꾹 눌러보았더니 다행히 화면이 켜졌다. 배터리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 증명된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더 큰 걱정은 오늘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새 핸드폰을 사야 할까? 아침 일찍 사설 수리업체를 찾아가야 할까? 회사에는 반차를 내야 하나, 연차를 써야 하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며 온갖 걱정이 밀려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배터리를 꾹 누르고 있으면 전원이 켜진다는 점이었다. 자세히 관찰해보니 배터리와 연결된 금색의 짧은 선이 눈에 들어왔다. 이 부분이 본체에 닿으면 폰이 켜지고 떨어지면 꺼지는 것을 발견했다. 드디어 문제의 원인을 찾은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이것을 안정적으로 본체와 결합시킬 수 있을까? 본체에 눌렀다 떼기를 반복하던 중, '똑!' 하는 소리와 함께 금색 선 끝의 은색 네모난 부품이 소켓에 결합되었다. 그러자 전원이 안정적으로 들어왔고, 더 이상 배터리를 누르고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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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이면 충분하리라 예상했던 작업이 새벽 2시를 넘기고 있었다. 폰이 망가질까 봐 크게 걱정했지만, 오히려 예상치 못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작은 부품 하나가 제대로 결합되지 않아 핸드폰이 작동하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의 일상과 삶에서 마주치는 난관들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돌아보면 문제의 핵심은 항상 단순하고 명확했다. 다만 그것에 이르는 과정이 고단하고 복잡했을 뿐이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핸드폰 고장은 마치 어두운 터널을 걷는 것 같은 막막함과 두려움을 안겼지만, 그 끝에는 그것을 덮고도 남을 만한 깨달음과 성취가 있었다. 이유 없이 만들어진 부품이 없듯이,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는 없다고 믿는다. 내가 이를 굳게 믿을 수 있는 이유는 2천 년 전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삶 때문이다.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배터리의 은색 부품처럼 오신 그분은, 결국 인간의 핵심적인 문제인 죄와 죽음을 완벽하게 이기셨다. 그분이 우리 삶의 핵심이며, 그분 안에서 쓸모없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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