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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 나는 왜 오블완을 하기 시작했을까?

고민일지

by 고민의 쓸모 2024. 11. 27. 23:58

본문

1.

오블완 마지막 날이다. 퇴사하는 날 첫 입사했던 때가 아른거리고, 첫 연애를 떠올리듯 연애가 끝나는 순간이 스쳐간다. 마치 전역하는 날 입대했던 날을 회상하는 것처럼, 오블완의 마지막 순간에 시작했던 첫날이 생생히 떠오른다. 늦은 저녁 집에 돌아와 씻으면서 글감을 떠올리던 중, 처음에는 '이유'라는 단어가 먼저 떠올랐다. 쓰고자 하는 이야기를 곱씹어보니 내가 왜 오블완을 시작했는지를 풀어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유'보다는 '목적'이라는 말이 더 적합해 보였다. 흥미로운 지점은 목적이 보통 '~을 위해서'로 표현된다는 점이다. 목적을 묻기 위해서는 반드시 '왜'라는 이유를 먼저 물어야 한다. 예를 들어 오블완을 하는 목적을 알고 싶다면 "왜 오블완을 하세요?"라고 이유를 먼저 물어야 한다. 검색창에 목적을 치면 대개 목표나 수단이라는 말이 따라붙지만, 우리의 질주하는 삶을 멈추게 하고 돌아보게 하는 것은 바로 '이유'다. 목적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왜'라는 부사를 활용해 이유를 물어야 한다. 목적과 이유는 마치 원의 속성 같다. 목적은 이유에서 시작하고, 이유는 목적으로 끝난다. 그리고 이를 실천적으로 이루기 위한 목표와 수단은 원이라는 넓은 경계 안에서 그 속을 채워가는 디자인의 행위가 아닐까.

 

2.

퇴근 후 린이를 만났다. 린이는 오늘 있었던 일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핵심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직장에서 내년 정규직 멤버로 예상했던 선생님에 대한 소식. 둘째, 두 전문가 집단 간의 힘겨루기에서 특정 집단의 장이 직위해제된 상황이었다. 대화 중 나는 린이의 놀라운 마인드셋을 발견했다. 위기 상황에서 린이는 삼불(불평-불만-불안)에 빠지지 않고 나름의 돌파구를 먼저 찾았다. 더욱이 자신의 안위만 고려하지 않고 다른 선생님들과 상생을 도모하는 방식으로 위기에 대응했다. 나는 단순히 지식을 나열했지만, 린이는 진정한 지혜를 보여주었다. 나는 린이의 지혜를 돕기 위해 그의 생각과 행동의 이유와 목적을 상기시켰고, 린이는 곧바로 "환자에게 집중해야겠다"고 화답했다. 정규직 여부가 중요했을지라도, 그녀는 본질을 잊지 않았다. 린이와 나는 서로의 환경에서 이유와 목적을 찾아 대입하며, 대화 속에서 삶의 방향을 잡아나갔다.

 

3.

팀장이 말했다. "대리님, 프로그램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철저히 관리해주세요." 이는 학과 프로그램이 본래의 취지와 목적에 맞게 진행되고 있는지 면밀히 살펴야 한다는 당부였다. 평가 보고서 작성 시 의미 있는 성과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나는 입사한 지 3주 밖에 되지 않아 주로 형식적인 측면에 중점을 두고 있다. 수직적 관료조직에서는 형식이 중요하지만, 내용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결국 성과는 형식이 아니라 내용에서 도출되기 때문이다. 좋은 내용에는 특별히 눈에 띄지 않지만, 끊임없이 묻고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 선명한 이유와 목적이 체화된다. 팀장은 내게 단순히 형식을 넘어 내용에도 신경 써야 한다고 당부한 것이다.

 

4.

사람들의 일하는 이유와 목적은 무엇일까? 나아가 삶의 이유와 목적에 대해 문득 궁금해졌다. 대부분 너무 바빠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거나, 이미 나름의 또렷한 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돈, 명예, 인정, 즐거움, 의미 등 각자 다른 답이 있지만, 결국 모든 답은 하나의 목적에 수렴된다. 바로 ‘행복’이다. 이 지점에서 이유와 목적에 관해 흥미로운 시각이 하나 떠올랐다. 대표적인 개신교 교리의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과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1문이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1문
문)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답)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 하는 것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문
문) 살아서나 죽어서나 당신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입니까?
답) 살아서나 죽어서나 나는 나의 것이 아니요, 몸도 영혼도 나의 신실한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이 문답이 누군가에게는 기괴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그 어떤 문장보다도 아름답고 경이롭다. 나 역시 행복하고 싶다. 하지만 행복의 이유와 목적을 끝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행복'이라는 관념만 남는다. 내 힘으로, 우리의 집단지성으로도 도달할 수 없는 그 어떤 것. 유한한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우리는 무한한 그 무언가를 끊임없이 추구할 수밖에 없다. 진정한 행복은 결국 그 무한한 무언가에 속하는 것이었다. 현생에서 행복을 수없이 학습하고 경험해도, 죄악과 죽음 앞에서 그 행복은 영속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세상 사람들의 삶의 목적이 '행복'이라는 상태에 수렴된다면, 크리스천에게는 존재 자체에 그 이유와 목적이 수렴된다. 삼위 하나님의 존재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그의 영광이 곧 자신의 영광이 되는 것에 생사를 맡기는 이들. 이들의 삶의 방식에 내 마음이 크게 기울어진다. 사실 내가 오블완을 시작한 건 상품이라는 잿밥 때문이었지만, 이 마지막 순간에 내 글이 그분께 영광이 되고 그분을 즐거워한다는 것으로 이유와 목적을 갈음하고 싶다. 내가 바라는 것보다 그분이 내가 바라는 것을 더 잘 아시리라 믿으니까, 혹은 믿고 싶으니까. 이것이야말로 내가 바라는 진짜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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