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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 저는 '갑각류 인턴'입니다.

고민일지

by 고민의 쓸모 2023. 11. 3. 13:54

본문

 1.

누군가에게 기회와 설렘으로 여겨지는 일이, 어떤 이에게는 걱정스럽고 두려운 일일 수 있습니다. 미취업 청년의 직무역량 향상과 다양한 일경험 위한 <미래내일 일경험 사업>이 제게 그러한데요. 이 글을 쓰는 저는 이번 프로그램에서 인턴형으로 참여하고 있는 ‘30대 중반의 인턴입니다. 눈치가 빠른 분들은 바로 앞 문장에서 어떠한 생경함을 느끼셨을 텐데요. 왜냐하면 '30대 중반''인턴'은 일반적으로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니까요. "뭐 어때, 30대 중반에 인턴을 할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당신의 개방적인 생각과 태도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지만, 당사자인 저에게는 지원하는 데 있어 많은 고민과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하필 왜 인턴을 지원했냐고요?? 잠시 저의 지난 이야기를 꺼내놓아야 할 것 같군요.

 

2.

지난 저의 20대는 여느 20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대학을 다니던 중 휴학과 졸업유예를 거쳐 2년 넘는 취업준비를 했습니다. 동기보다 조금 늦게 대학을 졸업한 뒤, 모 공기업에 지원하여 인턴과 계약직으로 첫 사회생활을 하고 그 후 운 좋게 공채로 입사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를 나오게 되는데요. 여기서부터 제 인생의 궤적이 또래들과는 조금 다르게 전개됩니다. 청년 관련 프로그램에 얼떨결에 참여했다가 소위 '청년문화기획'이라는 일에 남다른 흥미를 갖게 됩니다. 처음에는 지자체가 운영하는 청년정책모임의 일원으로 행사에 참여하는 수준이었는데, 1년 뒤 청년들을 위한 보조금 사업을 직접 기획하고 운영하는 대표가 되어 비영리단체를 창립하는 데까지 이르게 됩니다. 모임에서 삼삼오오 모였던 청년들 중, 마음에 맞는 몇몇 청년들과 의기투합하여 세운 단체였죠. 당시 청년문화운동은 전국적으로 활발했습니다. 일이 너무 많아 힘들었지만, 일이 주는 의미와 재미, 그리고 함께하는 동료 덕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기획과 운영, 실행과 결산의 연속으로 밤낮없이 일하던 어느 날, 번아웃이 찾아옵니다. 이 일을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까란 회의가 들었습니다. 돈과 사람 때문입니다. 지자체의 보조금 사업에는 (놀랍게도) 인건비가 없는 사업이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소득은 매우 불안정했고, 그러다보니 동료들도 하나 둘 떠나게 됩니다. 그저 버티는 것과 다름없는 청년사업들을 정리한 뒤, 저는 다시 취업준비생, 정확히는 수험생이 됩니다. 그러나 이 길 역시 제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수험기간이 다소 길어졌고, 심신은 지칠 대로 지치게 됩니다. 일상이 낙심이던 때, 과거 청년단체를 함께한 지인으로부터 <미래내일 일경험 사업>의 인턴(혹은 수련생) 프로그램을 소개받게 됩니다. 이때 제 나이는 30대 중반이 됩니다.

 

3.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 저에게 인턴은 이런 의미였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그게 무엇이든 모종의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고심에 고심을 더한 끝에 용기를 내어 '전주MBC'의 디지털 비즈허브 부서에 지원했습니다. 과거 방송국 직원들과 협업해야 할 일이 종종 있었는데 함께 즐겁게 일했던 기억이 전주MBC를 지원하게 된 주요 동기였던 것 같습니다. 출근 전, 하루 8시간씩 총 5일 간 사전직무교육을 받았습니다. 수십 명의 인원 중에 30대는 저를 포함해 단 세 명뿐이었는데요. 그중에서도 제가 단연 나이가 가장 많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원 자격은 만 19세부터 34세인데, 현재 저는 만 35세입니다. 본래는 자격요건 미달이지만 군입대한 남성의 경우 만 39세까지 자격을 인정해 주는 특별요건 덕택에 간신히 지원하게 되었으니 가장 많을 수밖에요. 여하간 20대가 다수인 인턴 동기들과 사전직무교육을 수료하고 몇 주 뒤, 드디어 전주MBC에 첫 출근을 하였습니다. 제가 해당된 '디지털 비즈허브' 부서에 총 4명이 배치되었고, 저는 '풍남상회'팀에 소속됩니다. 주로 맡은 일은 전주MBC의 대표 먹거리마켓인 '풍남상회'<스마트스토어 발주 등 운영관리><직영 자사몰 구축을 위한 기획 및 실행> 업무입니다. <풍남상회 스마트스토어> 업무의 경우 크게 네이버와 쿠팡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주력 상품은 '초코파이생크림 찹쌀떡'입니다. 먼저 초코파이는 전주에서 3대에 걸쳐 이어온 제빵명소이자 빵지순례의 일번지인 <풍년제과>의 대표 상품입니다. 다음으로 생크림 찹쌀떡은 줄 서서 뚫어야 사 먹을 수 있는 떡으로 오픈하자마자 동이 난다고 하여 '떡픈런'으로 불리는 <익산농협 떡방앗간>이 그 주인공입니다.

 

4.

매일 아침 출근하면, 네이버와 쿠팡의 온라인 스토어에 들어온 발주서를 작성하고 해당 업체에 이메일을 보내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됩니다. 첫 번째로, 스마트스토어 업무에서 필요한 업무역량은 뭐니 뭐니 해도<컴퓨터활용능력 및 정확하고 신속한 대응 능력>입니다. 특히 엑셀과 스마트스토어 플랫폼을 잘 다뤄야 하는데요. 주문이 하루에도 수십 건씩 들어오고 당일 오전 11시까지 해당 업체에 발주서를 보내야 하기 때문에 엑셀 발주서를 신속하게 작성해야 합니다. 상품 종류의 수도 수십 가지에 이르고 고객마다 제품 구입의 유형도 다양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헷갈려 실수가 나기 십상입니다. 실수는 곧바로 컴플레인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작업 시 섬세함이 요구되죠. 이때 엑셀의 함수와 서식 기능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면 작업의 정확도는 물론 시간까지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보다 효과적인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업무에 필요한 엑셀 기능만을 따로 추린 뒤 의도적이고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손에 익혔습니다. 그 결과 처음에는 2시간 이상 걸렸던 일이 단 4일 만에 1시간 이내로 업무시간이 줄어들었고, 오류 또한 거의 발생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함수와 서식을 적절하게 넣어 직접 만든 엑셀 양식덕분이었습니다. 스마트스토어 플랫폼은 운송장 번호를 입력 및 발주처리부터 다양한 제품의 상품등록’, ‘배송과 교환/환불의 CS’문의응대 및 리뷰게시등 고객서비스의 최전선에 해당되는 일입니다. 주의사항과 돌발상황 등이 생길 때마다 메모하고, 보기 좋게 매뉴얼화하여 신속하게 대응해야 실수로 인한 고객의 컴플레인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정확하고 신속한 대응이 주요한 역량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5.

위와 같이 비교적 정형화된 업무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두 번째로 맡은 업무 중 하나인 자사몰 구축 건은 비정형화된 업무에 가까웠습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기획'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과거 청년단체를 운영하면서 수많은 기획을 다뤄왔지만, 지역상품의 자사몰 구축에 관한 기획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 업무를 추진하면서 배우게 된 업무역량은 기획력이 아니라 <구조화와 의사소통역량>이었습니다. 이는 상급자가 책임과 자원이 제한된 인턴에게 거창한 기획력을 요구하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인턴은 상급자가 작성한 기획서의 목적과 내용이 선명하게 읽힐 수 있도록 가독성을 높여주는 방식을 고민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죠. 파편화된 정보를 연결하고 유사 내용끼리 범주화하는 구조화 능력이 해당 업무에서 제가 배운 역량입니다. 아울러 구조화역량만큼 중요한 것이 의사소통역량입니다. 업무지시는 하나만 주어지지 않습니다. 보통 여러가지 내용이 복합적으로 섞여서 주어지는데, 제시된 업무가 구체적이지 않고 다소 추상적일 때가 간혹 있습니다. 모든 일의 순서가 명료하게 딱 떨어지는 건 아니니까요. 들을 때는 뭔지 안 것 같았는데 막상 자리에 돌아와 키보드에 손을 얹는 순간, 머리가 하얗게 되는 순간은 흔한 일입니다. 물론 제게도 이러한 순간이 있었는데요. 처음에는 잘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혼자 해결해 보려고 이리저리 뒤적거렸는데 애석하게도 애꿎은 시간만 하염없이 흐를 뿐,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모르거나 애매할 땐 몇 번이고 물어봐야 한다' 이 말은 일터에 있어 진리에 가까운 명제라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인턴은 수십 번 물어봐도 괜찮은 직책입니다. 모르거나 애매하면 무조건 물어보세요. 질문을 통해 무엇을 해야할 지 스스로 확신을 가질 수 있어야 일도, 관계도 잘 풀리는 것을 직접 목격했으니까요.

 

6.

마지막 세 번째로, 제가 인턴을 하면서 깨닫게 된 중요한 역량은 바로 <공유>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컴활 및 구조화 및 의사소통'은 속성상 기술(skill)에 가까워서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실력이 느는 경향성을 띕니다. 그러나 공유는 기술보다는 태도(attitude)에 가까운 역량입니다. 공유하는 데 특별한 기술이 요구되는 건 아니니까요. 오히려 평소 습관 혹은 무의식적 반응에 가깝습니다. 연습한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죠. 이러한 공유를 잘 하기 위해서는 나에게 업무란 무엇인고, 동료란 누구인지 생각을 재정리하고 가능하다면 재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회사는 나 혼자가 아닌 동료와 함께, 부서와 함께, 궁극적으론 회사와 함께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고 자원을 나누는 사회적 공동체(조직)입니다. 모든 회사에 비전과 목표를 홈페이지라는 오픈소스에 대문짝만 하게 공유하는 것도 이 때문이죠. 제게 가장 약한 부분 역시 바로 공유입니다. 동료가 일을 잘하면 잘하기 때문에 심술 나서 공유하지 않고, 동료가 일을 못하면 못하는 대로 답답해서 그냥 혼자하고만 싶거든요. 이곳에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제가 만든 엑셀 양식을 동료와 공유하고, 지시된 일의 중간과정을 상급자와 동료에게 가능한 한 수시로 공유했습니다. 동료가 공유하는 점심식사 메뉴라는 작은 공유에도 '감사합니다!'라고 적극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아울러 차기 인턴 분들을 위해 12주 인턴과정을 마칠 때, 제 업무 일지를 책상에 남겨 놓고 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래야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투입된 여러 사람들 간, 엇박자의 불협화음이 아니라 잘 조율된 듣기 좋은 화음을 낼 수 있을 테니까요.

 

7.

갑각류가 어떻게 자라는지 혹시 아시나요? 가령 가재는 딱딱한 껍질을 가지고 있지만, 그 속은 살처럼 부드럽고 말랑말랑하죠. 모든 갑각류는 허물을 벗고 탈피한다고 합니다. 하얀 속살을 뽐내며 탈피한 직후가 가장 연약한데, 그 순간이 갑각류가 유일하게 성장하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비록 인간은 포유류지만, 어쩌면 마음만은 갑각류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 내가 너무 약해서 죽을 것 같고, 잡아먹힐 것 같고, 누군가가 스치듯 건네는 말 한 마디에 상처받을 수 있는 그 순간이, 갑각류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또한 성장하고 있는 시간 아닐까요?

 

8.

<미래내일 일경험 사업>은 인턴이라는 기회와, 전주MBC 방송국에서 뉴미디어라는 신생 부서의 경험과, 좋은 직원 및 동료인턴들을 만나는 기쁨과, 어느 곳이든지 나에게도 의미와 쓸모가 있음을 제게 가져다주었습니다. 이 글을 보는 당신의 인생이 어딘가 모르게 배배 꼬인 것 같고, 더 나아질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주변 상황마저 악화되어 간다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은 갑각류가 허물을 벗고 탈피하는 그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겁니다. 저를 포함해 가장 연약한 순간을 지나고 있을 이 세상 모든 인턴들에게 긴히 고합니다.

 

우리는 이미 성장 중입니다. 그냥 인턴이 아니라 우리는 갑각류 인턴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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