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여전히 그저 ‘황망하고 허망할’ 따름입니다. 지난 10월 29일에 있었던 이태원 참사 때문인데요. 당시 저는 집에서 막바지 기말고사 준비로 밤을 지새우던 중이었습니다. 활자의 늪에서 몽롱해져 가는 정신을 환기하고자 평소 자주 보는 유튜브 쇼츠(Youtube shorts)를 켰습니다. 의자를 한껏 젖힌 뒤 손가락으로 까딱까딱거리며 화면을 넘기고 있었죠. 이내 제 표정과 미간이 굳어졌는데, <속보: 이태원 할로윈 축제 사망자 속출>이라는 제목의 영상 때문이었습니다. 무언가 심각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직감적으로 알았지만, 어떤 상황인지 곧바로 이해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태원 핼러윈 거리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집단적 참사의 상황이 곧바로 가늠되지 않기 때문이었죠. 당시 저는 ‘이태원에서 건물이 무너진 건가’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밝혀진 것은 과밀화된 인파가 순식간에 무너지면서 사람이 깔리는 압사의 형태로 일어났다는 점입니다. 이번 사태가 기이했던 것은 발생경위와 책임소재가 분명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특히 ‘용어’와 관련한 논란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가령 정부가 마련한 합동분향소의 문구인 “이태원 사고 사망자”가 도마 위에 올랐지요. <사고 대신 참사>, <사망자 대신 희생자>로 변경해야 한다는 점이 골자입니다. 추후 ‘이태원’도 지적의 대상이 되어 <이태원 대신 10.29>로 변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빗발쳤죠. 고작 ‘용어’ 가지고 많은 이들이 핏대를 세우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책임소재’ 때문인데요. 이 화두와 관련하여 일상을 사는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은 ‘타인(특히 청년)이 겪은 고통과 슬픔은 우리와 무관한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2.
그날 이태원에 드리운 뜻밖의 죽음의 세상과 제가 누리고 있는 안온한 세상의 괴리 가운데서 허우적대고 있을 무렵, 또 하나의 거대한 세상을 보았습니다. 익명의 군중으로 가득한 ‘댓글’의 세상입니다. 크게 두 시각이 존재했는데, 하나는 놀라움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애도의 댓글이었습니다. 마치 내가 알던 친구, 심지어 내가 겪은(혹은 언젠가 나도 겪을) 일처럼 아파했죠. 다른 하나는 희생자를 향한 냉담함과 비아냥의 댓글이었습니다. ‘술 먹고 놀다가 자빠져 죽은 애들’이라는 식으로요. 분명 이런 댓글을 쓴 분들도 희생자들과 엇비슷한 나이의 또래 친구들일 텐데 어쩜 저렇게 매섭고 비정할 수 있을까요.(*온라인상에서 희생자를 비방할 시, 형법에 의거, 사자 명예훼손죄로 처벌될 수 있습니다) 제가 나누고 싶은 것은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시각의 존재입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태원 참사는 곧 나와 우리가 겪을 ‘청년문제’라는 것을요. 즉 당신이 청년이라면 그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우리들의 문제’라는 것이지요.
3.
현재 우리가 피부로 느끼고 있는 청년문제는 많습니다. 취창업 등 일자리, 주거문제, 학자금, 생활비, 청년고독사, 기회와 공정, 노동권, 기후위기, 다양성 존중 등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입니다. 더군다나 이번 참사는 ‘축제를 즐길 자유와 안전’도 우리가 극복해야 할 청년문제 사각지대라는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언론은 참사의 참사 원인을 진상 규명하고 책임소재를 분명하게 가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관계 전문가들은 밀집이 예상되는 대중의 관리와 작동 가능한 매뉴얼의 부재를 지적합니다. 전국의 청년단체들은 이태원 거리에 나와 ‘국가는 없었다’는 팻말을 들고 연일 공동추모를 집회하며 현 정부에게 날카로운 메시지로 되묻고 있습니다. 저도 이와 관련해 청년의 한 사람으로서, 우석인의 일원으로서 목소리를 내고 싶습니다. “타인(특히 청년)의 아픔과 고통의 곁에 서자”고 말입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당장 이태원의 추모집회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전공하는 공부에 최선을 다하는 것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인의 아픔과 고통을 해결하는 차원에서 말이죠. 왜냐하면 타인의 불행은 곧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이번 참사를 통해 배웠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인류애라기보다는 동료애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합니다. 개인주의가 일상이 됐지만 그렇다고 고립을 선택한 것은 아닙니다. 우린 분명 의미 있는 연결까지 포기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최근 제가 겪은 청년문제이지요.
4.
이태원의 차디찬 거리 위에서 가장 빛나고 찬란한 별들이 비극적으로 스러져가고 있었지만, 불행 중 다행히도 그 곁에는 또 다른 별들이 있었습니다. 멈춰만 가는 심장을 되살리고자 CPR이 한창이었죠. 시스템의 부재 속에서 과밀화된 군중의 압박은 압사라는 재난을 초래했지만, 쓰러진 한 사람을 향한 애끓는 압박(CPR)은 구원 그 자체였습니다. 타자의 아픔과 고통을 향한 공감력과 실행력은 그 어떤 능력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입니다.
5.
저는 작업치료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신체와 인지 등의 손상으로 인해 일상의 삶이 무너진 분들을 치료해 기능을 개선하고 일상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학문입니다. 과거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현장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했지만, 작업치료사라는 새로운 꿈과 뜻을 품고 편입학했습니다. 가끔 방대한 양의 학습과 이해의 어려움으로 곤욕을 겪을 때면, 작업치료사로 곧 만날 이들(환자)의 고통과 어려움을 상상합니다. 그러면 이 지루한 공부에 의미와 가치가 부여되고 이내 즐겁고 행복해하는 저를 발견하곤 하지요.
6.
심정지 직후 4분 이내가 CPR의 골든타임이라고 합니다. 인생에 있어 우리들의 골든타임은 언제일까요? 타자를 향한 공감과 연대를 바탕으로 함께 책임지며 성장하고 성숙해가는 아름다움의 능력이 배양되는 저와 우리를 상상합니다. 일상의 패배와 고통을 알며 타자를 책임질 수 있는 능력, 그 아름다움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습니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도 말했지요. “아름다운 사람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고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들의 골든타임은 우석인으로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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