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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2022-2024/노무사 수험일지

by 고민의 쓸모 2023. 6. 1. 11:03

본문

1. 

어쩌다 보니 올해 첫 글이다. 그간 나름 바빴기 때문이다. 22년 10월 말부터 수험을 준비하느라 말이다. 아니 연신 몇 달을 '재기N' 운운하며 공부를 시작조차 못한 채 연거푸 한탄만 외쳤던 나인데, 어떻게 공부로 바빴단 말인가. 어떤 특별한 계기나 사건이 있었던 것일까? 놀랍게도 그런건 없었다. 진실로 없었다. 그냥 시작하게 됐는데 오늘 이 시점까지 죽 이어졌다. 물론 중간에 코로나에 걸려 약 2주 정도 공부에 손을 놓는다거나 공부 초기에 여전히 공부시간과 장소가 들쭉날쭉 했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상향곡선을 그려나갔다. 나도 당황스럽다. 이렇게 쉽게 시작할 공부를 왜 이렇게 질질 끌어가며 온갖 한탄만 했던 것일까. 굳이 굳이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쥐어 짜내어 말해보자면 이렇다. 한탄하는 나날마저 귀찮게 되어서? 혹은 한여름 땀에 절은 머리와 티셔츠를 벗고 싶은 것처럼 견딜 수 없어서? 어이없지만 이게 그나마 굳이 쥐어 짜내 쓴 이유다.(이 표현도 진실에 비하면 분명 과장됐다.) 여튼 여기서 작은 교훈 하나를 깨쳤다. 바로 <그냥 시작하자>. 이론적으로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실천에 관해선 1도 몰랐던 교훈이다. 아는 게 다 아는 게 아니다는 말을 이 지점에서 다시금 절감했다. 처음 시작하거나 재도전하는 일이 너무 어렵지만, 어떻게든 시작의 허들만 넘게 되면 더 나은 방법과 대안을 찾아가는 나에게 이 격언은 대충 여겨선 안될 말이었다. 그렇게 시작은 허무했지만 과정은 보다 분명한 나의 수험공부, '재기N'이 시작됐다.

 

2.

작년에 특히 어려움을 겪었던 건 '공부장소와 공부시간'이었다. 이 부분부터 바로잡아야했다. 2월부터 공부장소는 삼천도서관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3월 이후부터는 공부시간이 평균 주 60시간을 달성했다. 아울러 일 평균 10시간의 시간을 기록했고, 점진적이면서도 안정적인 상향을 바탕으로 최고 70시간을 찍기에 이르렀다. 이윤규 변호사의 권고처럼 도서관의 페이스메이커도 찜해두었다. 그분 덕분에(정작 그분은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상시 높은 텐션의 집중력과 상승하는 공부량을 유지했는지도 모른다. 그냥 무턱대고 전략 없이 공부한 것이 아니다. 역시나 최우선은 전략이었다. 매주 공부계획을 세울 때 전략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점검하고 또 점검했다. 전략의 핵심은 역시나 기출이었다. 기출범위를 구체적으로 획정했고, 그 안에서 단원별로 기출빈도를 표시했다. 미기출 혹은 빈도가 매우 낮아 향후 출제 가능성이 낮거나, 출제되더라도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라 판단되는 단원과 문제는 과감히 공부범위에서 삭제했다. 그렇게 솎아내고 솎아낸 기출범위에 한정해서 공부했다. 아는 선지와 모르는 선지를 구분해 모르는 선지를 중심으로 반복하는 공부법을 취했다. 시험일에 다가올수록 공부량은 줄어드는, 대체로 합격자들의 방식을 충실히 따랐다. 마지막에는 군데군데 포스트잇이 붙은 아리송한 선지만 남았다. 반복에 반복을 더하며 하나하나씩 떼었다. 시험 전날, 그리고 시험 당일 전 과목 2회독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줄어들었다. 물론 안다고 넘어간 선지에 혹시나 망각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걱정되기도 했다. 시선이 그곳에 쏠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범위가 늘어나고 공부량이 늘어난다. 초기 전략을 상기하며 시선과 마음을 한곳에 집중했다. 결론적으로 작년보다 모든 면에서 보완되고 발전된 수험과정이었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마친 뒤, 작년의 패배를 설욕할 1차 시험을 위해 대전 동아마이스터고(5/27토)로 향했다.

 

3. 

결과는 압도적 불합. 석패조차 허용하면 안 되는 판국인데, 그야말로 대패했다. 첫 과목 노1 채점에서부터 당락을 갈랐다. 흔히 수험가에서 말하는 '불의타'을 만난 느낌이었다. 솔직히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어안이 벙벙하다. 작년보다 더 낮은 점수가 나왔으니까. 대충 서 너개 낮은 정도가 아니라 2과목(민,경) 과락, 노1과 사보는 간신히 과락만 면하는 수준. 노2만 작년보다 2개 덜 틀렸다. 충격적인 점수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던 건, 시험 후 느낀 내 감각과 판단이었다. 분명 경제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평이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이런 격차가 나오다니... 누군가에게 단단히 속은 것만 같다.(물론 그 누군가는 나 자신이다.) "좋았던 것도 나쁘게, 나쁜 건 더 나쁘게" 머피의 법칙보다 더 슬픈 이 문구는 내 앞에 펼쳐진 현실 그 자체였다.

 

4

먼저 '나쁜 건 더 나쁘게'는 역시 경제학이었다. 내가 거르기로 작정한 문제에서 대략 10개 가까이 나왔다. 첩첩산중으로 준비한 문제는 기존 기출에서 보지 못한 형태로 다소 복잡하게 출제됐다. 시험지를 뒤적거리며 풀 수 있는 문제를 찾아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난 당황해버렸다. 침을 꼴깍 삼켰다. 발가락이 저절로 오므려졌다. 갱지인 시험지가 물이 들 정도로 땀이 났다. 경제학은 그렇게 절반 이상, 아니 2/3을 찍는 수준에 이르렀다. 뚜껑을 열어보니 과락이냐 아니냐를 걱정했던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모든 문항을 한 번호로 찍으면 맞을 수준의 결과였다. 비참했다.

다음으로 좋은 예측은 나머지 4과목이었다. 노1, 노2, 사보는 무난했다. 중간중간 낯선 선지가 있어 2개의 답을 놓고 고민하게 만들긴 했지만, 무턱대고 찍은 문제는 과목 순서대로 2개, 3개, 6개 정도였다. 내가 찍은 선지가 잘 맞다면 평균 60점 이상은 충분히 득점할 것이라 예상했다. 놀랐던 건 민법이다. 경제학에서 고전을 치른 뒤 마지막에 푼 과목인데, 생각보다 편했다. 내가 보았던 기출에서 거의 다 출제된 것 같은 편안함이었다. 순간 '아 경제학보다 민법 먼저 풀 걸'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작년에 나를 애먹이게 한 그 민법이 아니었다. 그러나 결과는 경제학보다도 충격적이었다. 경제학과 비슷한 과락이 나온 것이다. 아니 분명 너무 잘 풀렸는데? 거짓말이라고 할 정도로 상반된 결과가 아닌가. 어찌해야할 바를 몰랐다. 실은 가장 충격적인 건 아무래도 가장 먼저 채점한 노1이다. 고득점 전략과목이었는데 과락을 간신히 면했다. 경제학에서 나오길 바란 점수가 노1에서 나온 것을 보고 직감했다. 이번에도 망했다는 현실을. 그렇게 허무함의 탄력을 받아 연이어 채점해 나갔다. 노2에서 그나마 선방, 사보는 노1보다 1개 덜 틀린 정도로 과락을 면했다. 다음은 민법이다. '혹시... 뜻밖에도 여기서 앞 과목의 실패를 덮어주진 않을까'하는 상상을 했는데 결과는 처참할 정도의 과락. 상상은커녕 망상 그 자체였다. 이 정도면 (시험에 관한 한) '머피의 저주'에 단단히 걸려버린 것 같다.

 

5.

시험본지 4일이 지난 지금도 어떠한 문제가 이러한 결과를 내게 된 건지 잘 모르겠다. 나의 예측을 정면으로 꺾어버리는 현실 앞에서 나는 무엇을 계획하고 준비할 수 있을까. 그동안의 공부가 아무런 효용이 없던 것일까? 내가 몰두한 고민과 투자한 시간들은 도대체 어디로 향한 것인가? 내가 만든 착각의 세계 속에서 합격과는 무관한 의미 없는 주먹질을 그토록 힘차게 반복해서 허공에 뻗었단 말인가? 내일부터 복기를 통해 문제의 원인을 디테일하게 파악할 예정이지만, 현재는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지독하게 창피하고 숨막히게 버겁다.

피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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