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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기2

2022-2024/노무사 수험일지

by 고민의 쓸모 2022. 9. 13.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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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노무사 2차 시험이 1주일 전(22.09.03-04)에 토-일 이틀에 걸쳐 치러졌다. 그날 나도 서울에 있었다. 물론 시험 때문은 아니고 여행이었다. 린이와 함께한 시크릿 여행. 우리 둘, 그리고 하나님을 제외하면 이 사실을 아는 이들은 없다. 여행의 목적은 재기와 다짐이었다. 남은 하반기를 잘 보내기 위한.

 

나는 약 16주간 하나의 문제를 지속해왔다. 이전 <재기>편에서 다룬 현실도피, 즉 해야할 것을 하지 않고 도망치는 것이다. 이 문제의 원인에 대해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나태와 게으름보다는 수치와 죄책(두려움)이라 결론내렸다. 이유인즉슨 커트 톰슨이 쓴 <수치심>이란 책의 내용에 매우 동의했기 때문이다. 즉 '수치심'이야말로 나의 현실도피 문제의 핵심원인임을 절감할 수 있었다. 나는 내 자신에게 부족하고 모자라며 의미가 없다고 줄곧 말하고 있었다. 성경은 이와 정반대의 기쁜 소식을 내게 들려주었지만, 꽤 오랫동안 형성된 수치라는 경험과 인식은 그림자처럼 나와 혼연일체가 되어 있었다. 아무것도 안한 것은 아니지만, 어떤 것도 제대로 해냈다고 할 수 없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기약과 어김이 반복됐다. 그렇다고 한 순간도 기약을 포기한 적은 없었다. 그저 기약은 갈수록 모호해지고, 어김은 확실한 득점으로 연결되고 축적됐다. 두드러지지 않는 교묘한 방식으로 진화된 셈이다. 수치라는 숨은 악은 그렇게 발 밑에서부터 내 종아리를 타고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순간 잠식이란 이런거구나를 직감했다.

 

나에게 주어진 지금이라는 현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당면한 시대와 상황이 나를 규정하는가. 아니면 복음이 나를 규정하는가. 그렇다면 복음과 현재는 어떤 관련이 있는가. 그 현재 안에서 부정직과 현실도피라는 결과를 일으킨 수치는 어떻게 해소될 수 있는가. 복음은 수치를 해결할 가장 완벽한 대안인가, 아니면 하나의 선택사항인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혹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내 인식과 행동은 어떠한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확실한 것은 <복음과 수치>는 현재 나에게 가장 중요한 주제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가장 관심 있는 주제임과 동시에 현재 내 일상에서 가장 가까이 경험(직면)하고 있는 실체이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수치의 문제에서 완전하게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수치의 실체를 알아갈수록 복음의 실체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을지 모른다. 반대로 복음의 실체를 매일의 삶에서 경험하는 것은 수치의 기억을 가장 확실하게 끊어내는 첩경일 것이다. 왜냐하면 수치는 그늘과 같아서 복음의 빛 앞에서는 결코 숨을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이 모순의 관계는 바로 그분 안에서 바로 알고, 공동체적으로 알려질 때, 진정한 재기가 이뤄질 것이다.

 

현실도피라는 작은 문제로 시작된 나의 고달픔은 단지 그것만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복음은 인생 자체를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그게 그분이 일하시는 방식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더 위대한 것을 주시는 분이다. 복음을 말할 때 십자가의 수치를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인류의 수치를 그분이 짊어지셨다. 나의 재기는 그분 안에서만 의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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