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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2024/노무사 수험일지

by 고민의 쓸모 2022. 10. 12.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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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못한 내 자신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순간 울화가 치민다. 자학 이상으로 내 자신을 까내리고 싶은데 이 짓은 그동안 참 많이도 했더라. 한편으로 생각해보면(내 성정도 감안해서) 내 자신을 오랜 기간 꾸준히 까내리는 경험들이 쌓여 이토록 재기하는 것이 힘들어진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추정처럼 말했지만, 실은 문제의 본질에 가장 가깝다고 본다. 내 자신이 부족하고 형편없다고 생각하는 것의 본질은 그리스도보다 내 자신의 상태를 더 많이 바라보고 염려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내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만큼이나 '그리스도' 또한 그럴 것이라고 여긴 것과 같지 않을까. '이 험난한 세상을 사는데 그리스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신경 써야할게 얼마나 많은데', '그리스도가 과연 나를 주목할까, 그분은 날 못마땅하게 보실거야' 등

 

(중간에 엄마가 내 방에 들어와 몸이 안 좋아 반찬을 못하겠다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시작으로 약 1시간 가까이 한숨 섞이 대화를 나눴다)

 

사실 이런 감정적이고 신앙적인 이유를 다는 글을 쓰고 싶던 건 아니다. 간만에 쓰는 글, 실제적인 1주차를 시작하기 앞서 쓰는 글이기 때문에 실용적이고 성찰적인 글을 쓰려고 했다. [공부의 방해요소] 같은 거 말이다. 사실 본 상황은 이렇게 진행되어도 실은 크게 문제될 건 없는데 나의 뇌 회로는 '계획한 대로 실행하지도 못하는 나약한 놈'이라는 메시지로 해석하고 있다. 이상과 현실의 부조화의 넓디 넓은 간극 사이에 빠져 매몰되어 버린 것 같다. 기쁨과 감격 대신 한숨과 탄식의 소리에만 기민하게 반응한다. 혹여 소리가 들릴까 조심스레 방문을 연다. 발소리가 들릴까 까치발로 걷는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본 뒤 물 내리는 일에 온 신경이 곤두선다. 고립을 자처하고 숨게 된다. 그러다 우연히 서로 마주치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호탕한 가면을 쓴다. <수치심> 책의 리뷰를 못 썼는데 이것이야말로 수치심이 강화되는 나의 실사례다. 자 읽었으니 수치심 대신 나의 상태를 가까운 사람들에게 노출하고 무엇보다 그리스도에게 내 밑천과 감정, 기대와 바람을 드러내자.

 

(린이와 통화를 했다.)

 

여튼 본래대로 '방해요소'와 '개선점'을 작성하려고 했는데, 현재 이부분을 작성하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이 들었다. 왜냐면 본격적인 공부를 착수하지 않았으니까. 물론 아침잠과 유튜브, 불분명한 동기부여, 어정쩡한 공부장소 4가지를 짚었지만, 이 모두가 공부루틴을 진행하는 가운데 빚어진 문제는 아니다. 그냥 공부를 착수하지 않은 앞으로 공부하는데 있어 문제가 될 것으로 추정하는 문제이다. 지금 이걸 논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상황 같다. 무엇보다 계획과 실행이 우선인 데 말이다. 지난 1차 때처럼 주차가 지날 수록 여러가지 문제들이 생길 것이다. 그때 기록해도 늦지 않다. 결론은 담주 바로 실행할 계획이나 짜라.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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