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수험 공부 왜 하려고 하냐?
왜 하긴, 노무사 합격해서 노무사 일 하려고 그렇지.
근데 왜 공부 안 하냐?
와 되게 돌직구다. 이전 글에도 썼는데 알다시피 1차에 떨어졌어. 내겐 큰 충격이었어. 나름 열심히 계획해서 그 계획대로 달렸는데 안된거야. 이번에 보니까 4,500여명 정도 붙은거 같더라고. 지원자가 9,000여명 넘었다고 하니까 사실상 50% 내외 정도의 합격률이었던거지. 평이한 시험이었던거야. 심리적 타격이 컸어. 자존심도 많이 상했지. 포기할까 고민도 했어. 1차 4,500명 안에도 못 들었는데, 단 300명만 뽑는 2차의 관문은 그야말로 캄캄한거지. 수차례 고민과 번민 끝에, 내년에 한번 더 재도전하기로 결정했어.
자 생각해봐. 만약 1차에 붙었다면, 9월에 2차 시험 응시하겠지. 설마 지금 놀겠어? 죽이되든 밥이되는 머리카락 쥐어 뜯어가면서라도 책 보고 있겠지. 올 2차는 110일 정도로 준비 기간이 짧았으니까. 근데 난 내년으로 기회가 넘어간거지. 구체적인 날짜는 안나왔지만 과거 시험일로 예측해보면 빨리 치른다 해도 1차가 4월, 2차는 8월일거야.
현재 난 과거의 상실감, 미래의 두려움, 그리고 현재의 안일함들이 뒤섞인거 같아. 한마디로 소외와 권태를 동시에 느끼는 거지.
권태와 소외?
응 부끄럽지만 그래. 현재 내 자신이 되게 맘에 안 들어. 주변을 보면 각자 하고 싶은 일, 혹은 해야 할 일 등을 주도적으로 처리해 나가는데 난 멍하니 시간만 죽치고 있는 것 같거든.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아냐. 설교도 많이 듣고, 책도 여러 권 읽어. 그러니까 지금도 쉼없이 자기개발적인 콘텐츠들을 눈과 손에서 놓지 않고 있어.
그런데 문제는 소비만 하고 있어. 내 삶을 주체적이면서 생산적으로 구성하며 살고 있다는 확신 자체가 없는거지. 예상컨데, 신선한 외부의 신호가 늘어지고 퍼진 내 심신에 자극을 주어서 어떤 강력한 변화가 있기를 기다리는 거 같기도 해. 되게 수동적인 태도잖아. 올바른 기대나 접근도 아니고 말야. 그래서 주로 성공한 이들은 개인의 의지에만 기대지 말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조성하라고 하더라고. 발등에 불 떨어지는 상황을 만들라는 거지. 내가 시도한 자기개발적 행위들이 주도적으로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조성해주지 않을까 기대한 측면도 없진 않아. 하 여전히 어리석고 안일하다.
여튼 내 심적 상태가 이러다보니 권태와 소외를 동시에 느끼는 거 같아. 의미없고 허무하고 외로워. 분명한 건 언급한 모든 문제의 본질은 내 안에 있단 거야. 날 이렇게 만들고 있는 건 내 자신이야. 내적 귀인 때문인거지. 이건 확실해.
지나치게 부정적인 감정에 침잠하지 말자. 첫 질문과 같은데 이렇게 물어볼게. 너 진짜 노무사 하고 싶니?
아 질문의 의도가 이거였구나. 정직하게 답할게. 솔직히 잘 모르겠어. 편히 말해보자면 지금 이거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어. 수험 돌입할 때, 아니 그전부터 이거 외에 플랜B가 없었어. 송곳이라는 웹툰 드라마를 보고 노무사라는 직업을 알게 된 건데, 까놓고 말하면 변호사처럼 노동법 분야의 법조인이 되는 거잖아. 상담가가 되는 거기도 하고. 어쨌든 수많은 노동/인사 문제를 법적으로 해결하는 노동 분야 전문가인데, 다른 전문직 중에 사람 냄새를 가장 많이 풍기더라고. 평소 인간다움의 가치관을 추구하는 나와도 잘 맞다고 생각했지. 업의 영향력 측면에서 말하고 싶은데 우선 8대 전문가 중 하나잖아. 내가 나이가 벌써 30대 중반이더라고. 머잖아 40대인데 이젠 나도 안정적이고 싶어. 안정된 기반 위에서 하고 싶은 일들을 펼쳐나가고 싶어. 업의 안정성과 함께 자율성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이 둘을 충족시키기는데 있어서 전문직은 가장 좋은 수단이지. 아울러 내가 시험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어. 숱하게 떨어졌지. 이 시험에 합격해서 시험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고 싶어. 그리고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청년들에게 위로와 용기가 되어주고 싶어. 또 하나는 가족에게 더 이상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 떳떳하게 자리 잡아서 특히 부모님을 경제적으로 돕는 이전의 내 모습을 되찾고 싶어. 마지막으로 린이랑 결혼하기 위해서야. 모아놓은 돈이 없어. 물론 조금 있었는데 수험생활에 다 쓰고 있지. 모아놓은 돈은 없어도 괜찮은 직업이 있다면 생활은 가능하잖아. 담보로 대출도 받을 수 있고. 나에게 직업은 염치와 책임의 최저선인 것 같아. 내 생활도 제대로 영위하지 못하면서 누구를 책임지겠다는 거야. 마지막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야. 사실 복음을 전하는 데 걸림돌이 되거나 더 적합한 직업이란 없지. 여기서 질문에 대한 답을 다시 하고 싶은데,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내가 정말 노무사를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어. 그런데 해보고 싶어. 인간다움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느끼게 해 준 노무사라는 일을 필드에서 경험해보고 싶어. 나와 잘 맞을 것 같은 직업이야. 이렇게 인간다운 직업을 가진다면 더 깊은 복음에 대한 이해랄 가지고 지금보다 더 잘 전할 수도 있을 거 같아. 그래서 노무사라는 직업을 꼭 경험해보고 싶어. 내 예상보다 많은 시간을 여기에 쏟고 있는데 헛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새 가죽에 담긴 술처럼, 새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고 싶어. 후회 없이 잘 헤쳐나가고 싶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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